유령 이미지

(…)
이런 상영은 향수에 젖어 회고할 기회를 주었다. 영사기를 작동시키지 않은 것이 10년이 되었을 테지만, 또한 이번이 아마도 영사기를 작동시키는 마지막 기회일 것이었다. 어머니의 신경과민 증세가 더 심해졌고(아마도 젊은 자신의 모습을 다시 본다는 두려움일 것이다) 우회적이고 어처구니없는 불안으로 표현되었다("변압기 냄새가 난다. 그만 멈춰라, 불이 나겠다"). 필름은 무성이었고 따라서 어떤 자막들이 그 필름들을 장식할 것이며 가족의 어떤 이야기가 그 이미지들에 덧붙여질 수 있는가에 나의 관심이 쏠렸다. 묘사적인 재잘거림에서 벗어나는 문장들을 여기저기에서 찾아내면서 나는 그 이야기가 어느 정도까지 가슴이 미어지는 것이며 죽음을 전달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그중에 몇 가지를 여기에 순서대로 옮겨 적는다.

-로베르는 자살했다…
-에두아르는 다리를 잘라냈다…
-그 안에는 죽은 사람들이 많이 있다…
-앙드레, 그가 얼마나 변했는지 보아라…
-르네가 완전히 포동포동해졌다…
-날씨가 추웠고, 나는 몸이 얼었다, 내가 어떻게 머리 손질을 했는지 보아라…
-반원 아치가 썩어서 완전히 걷어냈다…
-너도 알겠지만, 총천연색이 더 나을 것이다. 꽃들이 있고, 초록빛 풀도 있을 것이니까…
-그녀가 사고를 당한 곳이 바로 그곳이다, 그녀는 이마를 바닥에 부딪히며 넘어졌다…
-내가 얼마나 날씬했는지, 배도 안 나오고, 아아, 참 기막히네…
-나는 필름들이 낡은 것은 아닌지 의아하게 생각한다. 그것은 이보다 훨씬 더 선명했었는데…
-그는 물에 떨어졌고, 그는 죽었다. 수문에서 그를 찾아냈다…
-당연히 토마토지, 총천연색이었다면, 그게 토마토라는 것을 볼 수 있을 텐데…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분명 성모마리아야…
-거기, 쉬잔은 국부 통증을 느꼈다…
-이 필름들을 보는 게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일 수도 있겠구나…
-인형은 그 일생 동안 완전히 벌거벗은 상태로 있었다…
-우리는 수영을 했다. 물은 따뜻했다…
-이 모든 것이 바로 어제였던 것 같은데, 20년 전, 30년 전 일이다…

여기에서는 인물들이 그들의 움직임 때문에 사진에서보다 더 생동적인 것처럼 보인다 하더라도, 가족사진에서도, 박탈과 상실과 관련된 똑같은 슬픈 이야기가 가슴 앞느 독백처럼 시작되었을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이 허망한 움직임이 슬픔을 가중시키는 것인지 아니면 시간의 일시적인 망각인 것인지 자문했다…
그런데 나, 나는 이 필름들을 다시 보면서 어떻게 보았던가? 나는 몇몇 장면에 다시 마음을 사로잡혔는데, 크리스마스에 한 켤레 양말 선물 꾸러미를 푸는 할머니의 손 장면, 눈이 내리는데 굴러가는 검은색의 낡은 전륜구동, 자동차 창문으로 물 한 잔을 쏟아버리는 무거운 모피 외투에서 나온 여인의 가느다란 손, 또는 달력의 낡은 그 그림이나 또는 길을 뒤덮는 양떼 같은 것들이다(나는 전체 필름에서 이런 장면들을 분리해서 따로 작은 필름에 편집하고 싶지만, 그것은 아주 짧고, 초현실적일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특히 주목하는 것은 나의 시선이 10년의 간격을 두고 에로틱해졌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해변에서는, 그것이 가족의 주제에서 멀어지거나 또는 그 중심을 벗어나면 즉시 그 장면은 나에게 흥미로운 것이 되었다. 결혼식 미사에 나오는 장면에서 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배경에 보이는 합창대 어린이들의 말 뛰기 놀이지, 결혼 행렬이 아니다, 결혼 행렬에서 내가 아는 얼굴들을 알아보려고 애써볼 수 있는데도 말이다. 나의 욕망은 가족의 범주 속에 불청객처럼 억지로 끼어든 인물들에게로 향한다.
해마다 휴가지에서 찍은 사진들, 그리고 1960년에 컬러로 채색되다가 아이들이 크고 이상한 옷차림에 순응하지 않을 때인 1967년에 완전히 중단된 이 필름들을 통해서 나는 찾아보려 한다, 이 이미지들 가운데서 나의 몸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식별해보려고 하는 것이다. 부풀어오르고 정맥이 드러나보이는 어머니 젖을 빠는 내 모습을 보면서 나는 충격을 받았다. 서른 살의 아버지를 보면서 나는 다음과 같이 혼잣말을 했다. '아버지가 오늘 내 앞에 저렇게 나타난다면 나는 정말 아버지와 자고 싶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터무니없는 확인 사항 다음에, 나에게 드러난 것들은 아주 사소한 것들뿐이다. '어머나, 그 시절에 내가 아직도 팔찌를 차고 있었네.' 또는 '어머나, 나는 이미 겁쟁이였군, 나를 배에서 내려오게 하려면 선교 위에서 나를 팔에 안았어야 했어.' 또는 '어머나, 나는 물을 좋아하지 않았군.' 또는 '그 시절에 나는 해변에서 상반신에 옷을 걸치지 않은 채 타이티 모자를 쓰고 트위스트를 추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이미지들의 진부함에 대해 미안해 한다. "네가 실망했겠구나." 아버지가 나에게 말한다, 그것은 단지 가족의 활동사진일 뿐이다. 그렇지만 내가 다른 것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마지막 필름들 속에서는 바닷가에서 옷을 벗고 물속으로 뛰어드는 장면들이 극도의 흥분과 함께 해마다 반복되고 있다. 그렇지만 이런 하찮은 것들 이면에서, 나는 좀더 잔인하게, 점진적으로 쇠약해지는 육체들의 변화의 이야기를 그려본다.
필름 상영이 있는 저녁이면 나는 반향이 아주 잘되는 내방 칸막이 뒤에서 나의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슬그머니 말하는 소리, 그렇지만 주장하는 어조로 말하는 소리를 듣는다. "여보, 막내를 재우고 나서 잠깐 나를 보러 와." 그래서 나는 그들의 젊은 시절의 이미지를 최종적으로 다시 보여준 이 필름들이 그들에게 고통스러운 자극제 역할을 했다는 것을 상상할 수 있다.

늙어가는 연인들이 서로에게 말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우리의 육체가 동시에 노쇠해지지만, 나에게 당신은 오로지 한 몸만을 가진 것이 될 거야. 당신 머리카락들이 아주 천천히 없어져서 당신이 대머리가 되었다는 것을 나는 알아차리지 못했어, 매우 아름다운 당신의 머리를 나는 잊어버렸어, 그러나 내가 당신 눈을 바라볼 때, 나에게는 당신 머리가 언제나 당신 이마를 덮고 있어. 눈은 늙지 않는다고 사람들은 말하지. 당신이 살아온 모든 연령의 당신 모습을 나는 동시에 보고 있는 거야. 그리고 당신 배는 내 배 위에서 납작해지는 이런 지방 덩어리가 아니야, 나는 그걸 더이상 느끼지 못하겠어, 당신의 음경은 절대로 물렁물렁하지 않아. 그리고 여보, 당신 가슴은 쳐져있지 않아, 또는 가슴이 쳐져 있어, 그런데 나는 당신 가슴이 쳐져 있는 것을 좋아해. 우리의 육체는 이제 우리에게는 무감각해지고 보이지 않아. 그리고 영사기의 빛나는 그림 속에서 유령처럼 지나가는 이 젊은 육체들을 우리는 비밀스럽게 사랑하고 동시에 증오하기도 해. 우리는 그 육체들을 사랑하지, 역방향의 마술로 우리가 이미지 속으로 들어가길 갈망할 정도로, 그리고 이미지를 꽉 껴안고 그것과 함께 과거로 되돌아가길 갈망할 정도로 말이야. 또한 우리는 육체들을 증오하지, 우리가 그 육체들을 괴롭히길 바랄 정도로 말이야, 또한 우리가 이미지를 해체시키면서 이미지에 게걸스럽게 포만감을 느낄 수 있게 하기 위해서 고정된 이미지 상태로, 필름을 램프 앞에 지나치게 오랫동안 멈춰서 필름이 불타도록 내버려두길 바랄 정도로 말이야. 우리는 그 육체들을 증오하지, 육체들을 변형시키고, 절단하며, 이 비열한 환상들, 지나치게 아름다운 이 환상들이 더이상 우리를 ㄱ여멸할 수 없도록 필름에 직접 바늘 끝으로 줄을 그어 지워버리고 싶을 정도로 말이야… 왜냐하면 끊임없이 당신이 그녀와 함께 나를 속이고, 나는 그와 함께 당신을 속이기 때문이야. 나는 그와 함께 나를 속이고 당신은 나와 함께 당신을 속이는 것이야. 추억이 그렇게 쉽게 지워지지는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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