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일기
이번주에는 네개의 양말을 샀다. 두 개씩 두 번에 걸쳐서. 한 번 살 때 같은 디자인의 양말을 다른 색깔로 두 개씩 샀다. 먼저 산 것은 발목에 옆으로 힐끔하는 눈모양이 그려져 있는 것으로 오트밀색이랑 겨자색을 샀다. 이후에 산 다른 종류의 양말은 까만색과 어두운 보라색으로 원색으로 도형과 글씨들이 조금 쓰여져 있다. 쇼핑의 천국에 살게 되니 걸어다니며 고개만 돌려도 마음에 드는 양말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오래된 양말들은 좀 내다버려야겠다.
며칠동안 너무 힘들게 교정을 봤다. 과학사회학 책을 보고 있는데 교양서이지만 내용이 쉽지 않다. 이 책은 각기 다른 주제에 대한 27가지의 글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주제가 모두 각양각색인데다가 배경 지식이 없으면 몹시 이해하기 힘들다. 새로운 글이 시작될 때마다 완전 새로운 용어가 등장하니까 진도가 빨리 나가지 않고 툭툭 끊긴다.
어제 퇴근 전에는 생기론과 유기화학, 무기화학의 분기에 대한 챕터를 봤고 오늘은 지질학의 격변론과 동일과정론을 비교하는 챕터를 봤다. 그전에는 주로 코페르니쿠스나 갈릴레오, 뉴턴 등 비교적 관련 책도 많이 나와있는 사람들에 대한 것이었는데 뒤로 갈수록 힘들어진다. 27개라니. 아직 10개도 못했다.
과학책에서는 인용되는 과학자나 과학 저자의 풀이 좁은 것 같다. 코페르니쿠스 챕터를 보는데 닐 타이슨(난 전 회사에서 이 사람의 모 선집을 편집했었다)을 비판하는 내용이 나왔다. 그러니까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지나 태양계 역시 우리 은하의 변두리에 있다는 것이 밝혀진 이후, 근현대의 천체물리학자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인류의 위치에 겸양을 표하는 것 같지만 사실 ‘우리가 특별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우리는 매우 특별하다’고 선언하며 현대 과학적 인간의 탁월함을 찾고자 한다는 것임. 근데 이런 관점은 칼 세이건 등속의 우주과학 교양서들이 기본적으로 강하게 가지고 있다.
전에 편집했던 책에서 성추행자 닐 타이슨은 끊임없이 인간중심적인 시각을 우스운 것으로 만들려 했던 것 같다. 정확한 세부사항이 기억이 안 나서 몹시 답답하지만 그때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은 (SETI 프로젝트의 가능성을 옹호하며) 우리가 외계인과 소통하려고 할 때 우리의 문화와 전제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어떤 제스처를 취하거나 의미를 전달하려고 할때 ‘인간적’인 것에 의존하려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세이건을 읽어본 적은 없지만 이 비슷한 골자의 내용이 세이건의 지구의 속삭임 같은 책에 등장했단 것을 어렴풋하게 들어본 것도 같다.(그 책이 보이저 n호에 관한 책이므로?) 타이슨은 너무 세이건의 적자다. 반면 모 페미니즘 서적에서는 외계인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과학자들이 보이저 n호에 실어보낸 그림에 그려진 인간의 모습이 여성과 남성으로 구분되어있고 그 둘의 생식기 모양이 굳이 다르게 그려져 있는 것 역시 지극히 인간중심적인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라며 비판한 것 같다.
(칼 세이건의 마지막 아내 앤 드루얀은 세이건과 사업 파트너로서의 관계를 성공적으로 유지했으며 코스모스 책이나 다큐 등의 기획과 저술에 몹시 깊이 참여했다. 올해 초 타이슨의 성추문이 일어 코스모스 다큐멘터리 시즌2 방송에 문제가 생기자 드루얀은 “이 사태가 몹시 당혹스럽다”라는 식의, 귀찮아 죽겠고 이 사태가 얼른 무마되기만을 바라는 것 같은 퉁명스런 말을 했다.)
Ms. Druyan said that she has known Dr. Tyson for many years — her late husband met Dr. Tyson when he attended the Bronx High School of Science — and that she considers him a friend.
“I’m sick about this,” Ms. Druyan said. “The core of our shows is that it matters what’s true. No matter what, that means we will absolutely follow the evidence where it leads.”
하여튼 그 책에서 타이슨은 우주를 낭만적으로 보는 관점을 뒤집고 좀더 계몽적인 방식으로 우주를 바라보고자 했다. 그는 인간을 우주에 맞서고 있는 거대한 지적 존재로 구성하고자 한 것 같다. 그렇담 결국 인간을 강조하는 움직임이라는 점에서 그의 우주관 역시 몹시 인간 중심적이고 계몽적이라고 볼 수 있을텐데, 겉으로는 인간중심관을 배격하는 것 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물론 스스로는 실제로 그렇다고 생각할텐데)
최근 읽었던 경이의 시대는 낭만주의 과학 시대의 과학자들에 대한 책이다. 이성을 강조하는 과학과 주관을 절대적 가치로 모시는 낭만주의는 멀리 떨어져있었을 것 같지만 낭만주의 과학이란 것이 18세기 말에 유행했다고 한다. 낭만주의의 힘으로 과학은 경이롭고 놀라운 것이 됐다. 대중 과학이라는 새로운 개념도 이러한 변화와 함께 나타났다고 한다. 낭만주의 이전에 계몽주의적인 과학 사조에서는 오히려 그런 경향이 없었다고 한다.
최근의 아카데믹한 과학계가 어떤 분위기인지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주워들은 몇 가지의 키워드는 (이것들이 사조는 아닐지라도) 세계주의나 학제간 연구 같은 것이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정신없이 흘러가고 있다는 거 아닌가? 누가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연구자조차 자신이 뭘 연구하고 있는지 모르는 채... 만약 ‘과학 문화’라는 것이 존재해야 한다면 이것들 사이에서 어떤 위치를 잡고 균형을 잡을 수 있을지? 하지만 과학 문화라는 게 전문 과학 연구와 너무 동떨어져 있어 이 둘의 관계를 정합적인 연관성이 있는 종류로 봐야하는 것인지도 의문이다.
얼마전 이직을 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거의 처음으로 내 돈 주고 과학책들을 좀 샀다. 잘 팔리는 책들 위주였고 표지나 제목 같은 것들이 시장성이 높다고 생각한 것들이었다. 나름 이제 기획을 많이 하게 될 테니까,,, 라고 생각하며 산 것들이지만 역시 전혀 손이 가지 않았다. 오늘 그중 한 권인 우울할 땐 뇌과학이라는 책을 펼쳐보았다. 그 책은 표지가 무척 눈에 띄고 맘에 들었는데 에이다 당신이었군요, 최초의 프로그래머라는 그래픽노블 책과 비슷하게 표지가 그리드로 나뉘어져 있고 각 칸 별로 서로 다른 그림들이 들어가 있다. (개인적으로 이런 디자인을 좋아하는 것 같다) 원서의 제목은 ‘하강나선The downward spiral’인데, 한글 제목은 파격적으로 바꿨다. 그런데 안을 들여다 보니까 이건 뭐 뇌과학을 키워드로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트위터에 널린 정보들의 수준과 비슷한 호소력을 가진 매뉴얼북에 가까웠다. 우울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1/미간 근육에 힘을 풀어라 2/미소를 지어라 3/운동을 해라 이런 항목들이 나열되어 있는 식이었다.(물론 뇌의 신경계를 얘기하면서 비교적 좀더 과학적으로 보이는 부분은 좀 있지만 말이다)
잘 팔리는 책을 만들려고 노력해야 하는지 의문이다. 특히 회사에 소속되어 있을 때는 회사의 돈을 이용해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최대한 해보는게 맞지 않을까? 전중환의 진화한 마음도 들여다보았는데 표지와 본문 모두 2도 인쇄로 되어 있었는데 별색과 본문 디자인의 끔직함에 몹시 놀랐고 이런 책이 그렇게 높은 판매고를 올린다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아무렇게나 책을 펼치자 남자는 여자보다 모르는 사람과 섹스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덜하다는 것에 대해 진화론적인 설명(개같은)이 되어 있었다. 난 당연 진화심리학을 우습게 생각하지만 나 역시 어떤 생각의 에이전트일 뿐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하며 조금 물러서 생각해봐도, 그런 경향성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에는 별 문제가 없을 수 있겠지만 그게 어떻게 어떤 가능성을 파생시킬 수 있는 연구로서 성립할 수 있지? 싶었다.
지식을만드는지식 자연과학선집 시리즈가 몹시 흥미롭다. 오늘 퇴근 직전에 갑자기 10만원치 책을 샀다. 책이 오면 자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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