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성의 고리



백년 뒤, 매년 청어 어획량은 육백억 마리에 달한 것으로 추정된다. 상상하기도 어려운 이런 막대한 양에도 불구하고 자연사학자들은 인간이 생명의 순환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파괴의 작은 일부에만 책임이 있으며, 독특한 생리학적 조직 덕택에 청어는 고등생물이 죽을 때 느끼는 몸과 영혼의 두려움과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 마음을 놓았다. 하지만 실은 우리는 청어의 감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73

성을 지키던 사람들은 마지막 수단까지 다 써버린 지 오래였고, 운동이 처음 시작될 때는 그토록 가까이 있는 것만 같던 지상낙원의 희망도 버린 지 오래였다. 굶주림과 환각제로 감각이 남김없이 망가진 상태로 그들은 종말로 다가갔다. 6월 30일, 천왕이 목숨을 끊었다. 그에 대한 충성심에서였든, 아니면 정복자들의 복수가 두려워서였든, 수십만 명의 추종자들이 그의 모범을 따랐다. 장검과 단도, 불과 밧줄을 사용하거나 옥상이나 지붕에서 몸을 던지는 등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하여 그들은 자연을 절멸시켰다. 산채로 구덩이에 뛰어들어 스스로를 묻은 사람도 많았다고 한다. 이런 태평군의 자기파괴는 역사에서 유례가 없다. 168

하지만 너무도 자주, 너무도 갑작스럽게 압도하는 기억에서 나를 지켜내기 위해서는 오로지 글을 쓰는 길밖에 없었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 기억들이 내 머릿속에 갇혀 있었더라면, 날이 갈수록 점점 더 무거워져 결국 나는 그 짐을 감당하지 못하고 쓰러지고 말았을 것이다. 기억들은 몇달, 몇년 동안 우리 마음 속에서 잠자면서 소리없이 점점 더 자라나다가, 결국 어떤 사소한 일을 계기로 되살아나 기묘한 방식으로 삶을 향한 우리의 눈을 멀게 한다. 그 때문에 나는 얼마나 자주 나의 기억들과 이 기억들을 글로 옮기는 작업을 굴욕적이고, 결국은 저주할 만한 일로 느끼곤 했던가! 하지만 기억이 없다면 우리는 무엇이 될까? 우리는 가장 단순한 생각조차 정리하지 못할 것이고, 풍부한 감정을 지닌 심장이라도 다른 사람에게 애착을 느끼지 못할 것이며, 우리의 존재는 무의미한 순간들의 끝없는 연쇄에 불과할 것이고, 과거의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게 될 것이다. 우리의 삶이란 얼마나 비참한가! 온갖 잘못된 상상들로 가득하고, 거의 우리의 기억이 내미는 환영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만큼 무의미하다. 내 안에서 일어나는 격리의 감정은 점점 더 끔찍해진다. 299

이로부터 도출될 수 있는 유일한 결론은, 바로 케이스먼트의 동성애가 그에게 사회계급과 인종의벽을 넘어서 권력의 중심에서 가장 멀리 있는 사람들에 대한 지속적인 억압과 착취, 노예화와 불구화를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해주었다는 것이다. 161

우리 모두는 우리의 유래와 희망이 미리 그려놓은 똑같은 길을 따라 차례차례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우연은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이 일어난다고 스스로에게 이야기할수록 나는 점점 더 자주 나를 엄습하는 반복의 유령에 이성으로 맞서기가 더 힘들어진다. 사람들과 만나기만 하면 나는 과거에 이미 똑같은 사람들이 똑같은 생각을 똑같은 방식으로, 똑같은 말과 표현과 몸짓으로 말하던 것을 어디선가 보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때 느끼는 몸의 상태는 때로 아주 오래 지속되는, 지극히 낯선 상태와 아주 흡사한데, 심각한 출혈로 야기되는 혼미한 상태와 같으며, 방금 부지불식간에 심장마비가 스쳐지나간 사람에게 나타날 법한, 사고능력과 언어기관과 관절의 마비로까지 번질 수도 있다. 오늘날까지 제대로 설명되지 않고 있는 이 현상은 일종의 종말의 선취, 공허로의 진입, 혹은 일종의 이탈일 수도 있는데, 이는 연거푸 동일한 선율을 반복하는 축음기처럼, 기계의 고장이 아니라 기계에 입력된 프로그램의 교정할 수 없는 결함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어쨌든 마이클의 집에서 보낸 그 8월 말의 어느날, 과로 때문인지 다른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여러 번 발밑의 땅이 꺼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윽고 내가 떠날 시간이 되었을 무렵, 두어 시간 휴식을 취했던 앤이 방으로 들어와 우리 곁에 앉았다. 오늘날에는 누구도 슬픔을 짊어지고 다니지 않으며, 심지어 검은 손목띠나 옷깃의 검은 단추조차 볼 수 없게 되었다는 이야기로 우리의 대화를 이끌어간 사람이 그녀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소설의 화자는 1935년 어느 저녁, 비오이 까사레스라는 사람과 함께 라모스 메히아의 가오나 거리에 있는  한 시골 별장에서 저녁을 먹으면서 어떤 소설의 작법에 대한 긴 대화를 나누었다고 적고 있는데, 이 소설은 명백한 사실을 부정하고 다양한 모순으로 얽혀 있어서 소수의 독자들-아주 적은 소수의 독자들-만이 소설 속에 숨겨진 끔찍하기도 하고 전적으로 하찮기도 한 현실을 간파할 수 있게 씌어져야 했다. 화자는 이어서 이렇게 보고했다. 우리가 앉아 있던 방으로 이어진 복도의 끝에는 타원형의 흐릿한 거울이 걸려 있었는데, 이 거울은 모종의 불안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우리는 이 말없는 거울이 우리를 염탐한다는 느낌을 받았고, 그래서 우리는 거울이 어떤 끔찍한 면을 갖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비오이 까사레스는 우끄바르의 한 이교 창시자가 거울의 무시무시한 점은 성행위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숫자를 증식시킨다는 데 있다고 말한 것을 떠올렸다. 88

토머스 브라운은 『널리 진실로 오인되는 견해들』의 내가 다시 찾아내지는 못한 어느 부분에서 당대의 네덜란드 습속에 대해 적고 있는데, 이에 따르면 당시 그곳에서는 망자의 집에 있는 모든 거울과 풍경이나 사람 혹은 들판의 열매가 그려진 모든 그림들을 슬픔을 표현하는, 비단으로 만든 검은 베일로 덮는 습속이 있었고, 이는 육신을 떠나는 영혼이 마지막 길을 가면서 자기 자신을 보거나 다시는 보지 못할 고향을 보고 마음이 산란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고 한다. 345

이미 사자의 복장을 갖춘 그녀는 거의 오십년에 이르는 자신의 섭정 하에서 해체 지경에 도다한 제국을 향한 고별사를 구술했다. 되돌아보면 역사란 해변으로 거듭 몰려오는 파도처럼 우리를 덮치는 불운과 시험으로만 이루어져 있으니 지상에서 살아가는 모든 날 가운데 어느 한순간도 진정으로 근심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 그녀의 말이었다. 어르비스 떼르띠우스에 대한 글에는 시간의 부정이 뜰뢴 철학학파의 가장 중요한 원칙이라고 적혀 있다. 이 원칙에 따르면 미래는 오로지 우리가 현재 지닌 두려움과 희망의 형태로만 현실성을 지니며, 과거는 기억으로만 존재한다. 다른 견해에 따르면 세계와 세계 속의 온갖 생명들은 그 완전하면서도 착각에 지나지 않는 전사와 함께 바로 몇분 전에 비로소 창조된 것이다. 제 3의 학설은 지구가 신의 거대한 도시에 있는 하나의 막다른 골목이라거나, 불가해한 그림들로 가득한 어두운 방이라거나, 더 나은 태양을 에워싼 연무로 이루어진 집이라고 주장한다. 제 4의 철학자 학파의 대표자들은 이미 모든 시간이 지나갔으며, 우리의 삶이란 돌이킬 수 없는 과정의 여운이 비치는 것일 따름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우리는 세계가 이미 가능한 변이들을 얼마나 많이 겪었는지, 그리고 아직 남아 있는 시간들이 있다면 그게 몇개인지 알지 못한다. 확실한 것은 개별 생명이나 생명 전체, 나아가 시간 자체를 상위의 씨스템과 비교해보면, 낮보다 밤이 훨씬 더 오래 지속된다는 사실뿐이다. 토머스 브라운은 1658년에 발표한 논문 「싸이러스의 정원」에서 이렇게 쓴다. 시간의 밤은 낮을 훨씬 더 능가했으니, 분점이 언제였는지 누가 알겠는가?(The night of time, far surpasseth the day and who knows when was Aequinox?) 183

몇날 몇주 동안 성과도 없이 머리를 쥐어짜지만, 만일 누가 물어보기라도 하면 계속 글을 쓰는 것이 습관 때문인지, 과시욕 때문인지, 아니면 배운 게 그것밖에 없어서인지, 그도 아니면 삶에 대한 경탄이나 진리에 대한 사랑, 절망, 분노 때문인지 말을 할 수 없고, 글을 쓰면 점점 똑똑해지는 건지 아니면 더 미쳐가는 건지도 대답할 수 없다네. 아마도 우리 문인들은 누구나 자신의 작품을 써나갈수록 조망을 잃어버리고, 그래서 우리가 만들어낸 정신적 구성물이 점점 더 복잡해지는 것을 인식이 발전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일 텐데, 실은 우리의 길을 실제로 지배하는 예측 불가능성을 결코 이해할 수 없으리라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예감하고 있네. 214

우리의 시선이 도시와 근교 위에 걸린 창백한 반사광을 더이상 관통하지 못하는 지금, 18세기를 떠올려보면, 산업화 이전에 이미 적어도 특정 지역에서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가련한 몸이 나무틀과 살로 조립해놓은, 추가 매달리고 고문장치나 우리를 연상시키는 베틀에 꽁꽁 묶여 있었는지 놀랍기만 하다. 인간과 기계 사이의 이 기이한 공생은 아마도 비교적 원시적인 그 형태 덕분에, 우리가 오직 우리 스스로 만들어낸 기계에 묶여 있어야만 지상에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음을 이후에 등장한 다른 모든 공업형태들보다 더 분명히 보여준다. 그래서 비슷한 시기에 독일에서 출판된 『경험심리학 잡지』에도 적혀 있뜻이, 직조공들과 여러 면에서 비슷한 학자들, 그리고 여타 글쟁이들이 우울증 및 이로부터 파생되는 온갖 병들에 특히 쉽게 걸리는 것은 오랫동안 구부정하게 앉아 줄곧 예민하고 정확하게 생각하고, 세밀한 인공무늬들을 무한정 계산해야 하는, 이들이 하는 일의 성격을 고려할 때 당연하다고 할 수 밖에 없다. 이른바 퇴근 뒤에도 멈출 줄 모르고 머릿속을 맴도는 끝없는 생각, 잘못된 실을 붙잡았다는, 꿈속까지 파고드는 느낌이 사람을 어떤 막다른 골목과 낭떠러지로 몰아가는지 이해하기 쉽지는 않으리라. 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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