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두기 - 토성을 경유하여

거리두기의 윤리, 혹은 거리두기의 냉혹함에 대해 생각한다. 토성의 문장들을 떠올려봤을 때 그들이 유달리 대상들과 거리를 두는 태도를 취하는 것 같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책을 덮은 후 자연스레 대상과의 거리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것은 이 소설에 제발트 이외의 인물은 제발트와의 관계에 관해서가 아니라 그 인물의 당시적인 상황을 통해서만 설명되며 인물들은 주로 여행 도중에 스쳐지나간 이들이거나 죽었거나 멀리 있는 등 기억으로만 존재하기 때문인 듯하다. 제발트가 여행하는 장소들 역시 그 자체로 화자에게 감정적으로 의식적으로 강한 영향력을 가지는 주인공으로서 존재하지만 그 배경과 화자와의 대화나 무의식적 교감은 없다. 그가 여행자이고 낯선 도시, 처음 본 자연을 스쳐 통과하는 이이기 때문에 만나는 모든 대상과의 거리가 전제되는 것이기도 하지만, 수많은 곳을 들르고 그 곳의 지명을 나열함에도 불구하고 특정한 공간성이 없이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은 그가 통시적인 역사의 흐름을 하나의 덩어리로 뭉쳐 그 시간 가운데를 스쳐지나가는 이이기 때문이다. 시간은 사후에야 어떤 형태로 정의할 수 있는 구획된 형태를 가진다. 시간 속에서 기거하는 이는 흐름으로서 우리를 휘감고돌지만 우리가 있는 장소에 우리와 함께 존재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이런 거리두기를 윤리적이라고 부를 수도 있고. 고상함을 표방하는 역겨운 자기보호적인 태도라고 부를 수도 있다. 그러나 제발트의 글이 윤리적이라거나 태만하다거나 역겹다거는 것에 대해 쓰려는 것은 아니고 나는 토성을 읽으며 그것에 대해 생각해본 적도 없다. 물론 움찔움찔하는 순간들은 있었는데, 그것은 백인 남성만이 끝도 없이 이어나가며 성취할 수 있는, 그것들을 성취하면서 어떤 것들을 자연스레 누락시키는, 토성에서 찾아볼 수 없는 어떤 a-텍스트의 흐름을 내가 의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주제는 토성에 대해 논하며 거론하기에는 거대한 주제이고 또 글의 장점을 과소하게 평가할 가능성이 있어 미루기로 한다. 다만 나는 이 글을 매개로 하여 거리두는 이의 태도, 이러한 태도가 대상에게 주는 인상과 느낌, 영향력, 그것의 윤리성 및 특질을 논하려 한다. 이 논의는 시종일관 나에게 거리를 두는 어떤 사람한테 너무 화가 나서 쓰기 시작한 것이지만 논의가 충분히 넓어진다면 제발트의 토성을 다소 먼 곳에서 조망하는 비평 역시 글의 일부에 포함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태도는 몇 가지의 결정적인 사건들에 의해 형성되기 시작하여 이를 강화하는 과정을 거치며 어떤 목적을 향한다. 그러며 목적한 바 없는 결과까지 불러온다. 물론 형성의 과정은 직선적이지 않다. 원인은 단일하지 않고, 강화는 일관적이지 않을 것이며, 목적으로 이행하는 길에는 언제나 충돌이 있을 것이다. 어떤 태도는 목적 없이 희미한 원인에 의해서만 촉발될 수 있으며, 다른 경우 원인 없이 목적에 의해서만 추동될 수 있다. 그렇다면 원인과 목적을 구분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과연 의미가 있나, 목적이 없는 경우 원인의 제거 혹은 달성이 목적이 되고 원인이 없는 경우 목적에의 갈망이 원인이 되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이 과정을 원인-강화-목적 및 결과로 이어지는 일직선적인 인과관계에 포섭되지 않는 것으로 믿자. 그럼에도 두 가지의 추상적인 구조로 이루어진 모델을 도입하자. 첫째는 원인-태도 둘째는 태도-결과. 원인-태도의 경우 싫어하는 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도입된 태도의 기작으로 파악했다. 태도-결과의 경우 우리가 좋아하는 것에 다가가기 위해 도입된 태도의 기작으로 파악했다. 두 모델은 모두 그 앞뒤로 이어지는 수많은 화살표들 그리고 동시에 글자들 바깥으로 뻗어나가는 스펙트럼을 보유하고 있다.

원인-태도
거리를 두는 태도의 정반대 편에는 동일해지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 이 감정은 어떤 의미에서 사랑이라고 분류된다. 연인들은 서로의 눈을 바라보고, 서로의 작은 움직임에도 예민하게 떨며, 상대의 표정과 말투를 따라하며 사랑을 느낀다. 1우리는 사랑에 실패하고 좌절할 수 있다. 그래서 사랑으로부터 물구나무를 넘으며 달아나다가 거리두기 태도로 귀착할 수 있다. 2또한 우리는 사랑하지 않는 이와의 동일시를 막기 위해 거리를 둘 수도 있다. 우리가 아무리 피하려고 해도 우리는 옆에 있는 서로를 닮아가고 그 결과 일정 부분 우리 자신을 잃는다. 사랑하지 않는 것을 사랑하지 않기 위해, 좋아하지 않는 것들과 하나되지 않고 우리 자신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거리를 둔다. 이 두 가지 원인은 공통적으로 자기 자신을 보호하는 것을 원인에서 도출되는 목표로 포함한다.

태도-결과
거리두기를 통해 우리가 도착하는 곳은 사소한 사건들을 보편으로 편입시키는 뛰어난 이해도, 지식과 지성으로의 이행, '나이듦'과 성숙의 지혜. 그리고 동시에 "종말의 선취, 공허로의 진입, 혹은 일종의 이탈"이다. 모든 것은 반복적인 역사의 흐름, 규칙, 패턴으로 이해된다. 우리는 세상을 더 잘 이해하게 되고 얼굴들에서 규칙을 찾고 X의 행동에서 Y의 행동을 찾아내고 사랑하는 이의 얼굴에서조차 행인의 얼굴을 본다. 가장 소중한 이의 이해불가능한 행동을 이해하게 되지만 그 사람을 이해하니까 가만히 놓아두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불가능으로 돌아온다. 거리를 두는 것은 불가능을 인정함과 동시에 불가능이 언제나 포함하고 있을 가능성을 누락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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