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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의 실재와 비교하여 다른 실재들은 제한된 의미 구역finite provinces of meaning, 즉 한정된 의미와 경험 양식으로 특징지어지는 지배적인 실재 내의 소小영역으로 나타난다. 지배적인 실재는 말하자면 그 구역의 모든 면을 감싸고 있으며, 의식은 벗어났던 지배적인 실재로 항상 다시 돌아온다. 이것은 꿈의 실재나 이론적 사고의 실재에 대하여 이미 보여준 바와 같이 명백하다. 이와 비슷한 '전환commutations'이 일상생활의 세계와 놀이의 세계 사이 ─아이들의 놀이에서는 물론 어른들의 놀이에서는 훨씬 더 날카롭게─에서 일어난다. 극장은 어른들 입장에서 그러한 놀이의 좋은 보기를 제공한다. 실재들 사이의 전이는 커튼의 올라감과 내려감에 의해 표시된다. 커튼이 올라가면, 구경꾼은 자체의 의미를 지니고 있고 일상생활의 질서와 많은 관계가 있을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질서를 지닌 '다른 세계로 전이된다.' 커튼이 내려가면, 구경꾼은 '실재', 곧 일상생활의 지배적인 실재로 '돌아간다.' 이 지배적인 실재와 비교할 때, 무대 위에서 제공된 실재는 불과 몇 분 전의 공연이 아무리 생생했다 할지라도 이제 빈약하고 순간적으로 보인다. 예술과 종교가 제한된 의미 구역의 고유한 생산자인 만큼, 미적·종교적 경험은 이러한 종류의 전이를 풍부하게 만들어낸다.
모든 제한된 의미 구역들은 일상생활의 실재로부터 관심을 돌리는 것으로 특징지어진다. 물론 일상생활 내에서의 관심의 전환도 있지만, 제한된 의미 구역으로의 전환은 훨씬 더 과격한 종류의 것이다. 과격한 변화는 의식의 긴장 가운데 일어난다. 종교적 경험의 맥락에서 이는 '신앙의 도약'으로 적절히 불려왔다. 그러나 일상생활의 실재는 심지어 그러한 '도약'이 일어날 때조차도 그 지배적인 지위를 유지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른 무엇보다도 언어가 이를 확인시켜 준다. 내 경험의 객관화를 위해 내가 사용할 수 있는 공통언어common language는 일상생활에 기초를 두고 있으며, 제한된 의미 구역에서의 경험을 해석하기 위해 사용할 때에도 끊임없이 일상생활에로 주의를 되돌리게 한다. 그러므로 전형적으로, 나는 제한된 의미 구역의 실재를 해석하는 데 공통언어를 사용하기 시작하자마자, 그 실재를 '왜곡'한다. 즉, 나는 비일상적 경험을 일상생활의 지배적인 실재로 '번역'하게 된다. 이는 꿈의 경우에 바로 알 수 있으며, 이론적, 미적 또는 종교적 의미 세계에 대하여 보고하려는 사람들에게서도 전형적이다. 예술가가 자신의 창작물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처럼, 또는 신비주의자가 자신의 신과의 만남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처럼, 이론물리학자는 그의 공간개념은 언어적으로 전달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모든 이들 ─꿈꾸는 이, 물리학자, 예술가, 신비주의자─도 역시 일상생활의 실재에 살고 있다. 실로 그들에게 중요한 문제 가운데 하나는, 이 실재와 그들이 과감하게 넘어 들어간 소영역 실재와의 공존을 해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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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이라는 지배적인 실재에서 그 특권을 뺏을 수 있는가를 생각한다. 내가 있는 곳의 시공간적 좌표와 나의 몸 존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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