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이상학과 과학 밖 소설

그러나 유형 2이 세계에 어떤 “통계적인” 항구성을 부여하는 것은 어쨌건─빈도에 기대는 것일지라도, 맹아 상태에 불과할지라도─자연과학의 시작이 여전히 가능함을 인정하는 것이 아닌가? 이 두 규칙성─유형 2의 자연과 사회─사이의 유비가 더 정확해지고, 우리가 어떤 실험과학도 따르지 않는 세계를 사유할 수 있으려면, 거기에 역사적 차원을 덧붙여야 할 것이다. 18세기 말의 사람이 당시의 파리에서 사륜마차 사고가 얼마나 자주 일어나는지 그 근사적 빈도를 추산해보려 한다고 가정해보자. 만일 이 사람이 21세기 파리에서는 사륜마차 사고의 수가 거의 제로에 가까워지리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는 그것으로부터 말의 안전장치의 진보가 몇 세기에 걸쳐 예외적인 성과를 이루었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그의 시대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교통수단으로 인해 사륜마차가 거의 사라졌다는 것을 예측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그 개별적인 예측 불가능성에도 불구하고 타자의 행동에 대한 양화 가능한 확률을 중단기적으로 신뢰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사회적 규칙성은 더 커다른 층위의 역사적 변화의 가능성과 보조를 맞추는 것이다. 즉 이 역사적 변화는 어떤 의미에서는 더 심층적인, 예측 불가능한 변화이다. 왜냐하면 이번에는 그것을 임의의 양적인 법칙에 종속시키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역사적인 전복, 즉 한 시대에서 다른 시대로의 전환 과정에서 일어나는 전복이라고 해도 실험적인 유형의 인과법칙들 속에 기입되는 것이 불가능한 이러한 시기상의 변화들은 사회적 규칙성의 흔적을 모두 제거하지 못했다. 그러면 우리는 동일한 방식으로 유형 2의 세계들에 사는 “사람들”이 일상적인 항구성의 점진적인─그러나 근본적으로 예측 불가능하고, 어떤 빈도적 연구로부터도 벗어나는─변형들과 관련된 “자연적 시대의 변화들”을 알고 있으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우리가 아마도 역사적 변화에서 알아차릴 수 있을 것과는 반대로, 이 변형들이 입증 가능한 원인들을 전적으로 결여하고 있을 것이다. 그것들은 자연 속에 “시기들”을 도입할 것이고, 그 시기들의 장기적 변양들은 단기적인 “사물들의 동요”에 덧붙여질 것이다. 이 세계 속에서 원인없는 사건들은─모든 엄격한 확률로부터 벗어나─동적인, 기묘한 규칙성들을 직조해 낼 것이고, 그 안에서 인간들은 그럭저럭 자신들의 개별적인 삶을 이어갈 것이다.
요컨대 가장자리의 변덕들과 시대적인 변양들이 일어날 수 있는 이러한 자연은─그리고 이 자연을 통해 과학과 의식의 가능 조건들을 떼어내는 일은─실제로 사유 가능한 것이다. 과학의 조건들이 사라진 세계가 필연적으로 의식의 조건도 사라져버린 세계인 것은 아니다. 과학 없는 의식은 사유의 붕괴를 의미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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