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기에 감상한 다큐멘터리들에 관한 메모
며칠 전 일을 하느라 정신을 혹사시킨 후 프레더릭 와이즈만의 <뉴욕 라이브러리에서>를 보러 갔으나 3시간 동안 앉아있을 수 있을 만큼 몸이 좋지는 않았고 지루하기도 하여 중도퇴장하였다. 도서관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행사와 사건과 대화들에 대한 기록을 시도한 영화였는데 나는 도서관에서 일어나는 공적인 사건들에 재미를 느낄 수 없었다. 이런저런 의사결정 과정들을 생략없이 보여주며 민주주의에 대한 것을 이야기하는 영화라는 기사를 읽은 바 있으나 기록욕구와 그것이 무슨 상관이 있나 싶었다.
올해 하반기에 본 몇 개의 다큐멘터리에 관한 메모를 남겨 본다.
다큐멘터리 룸 첫 회에 참가해서 첫 영화로 <컨커션 프로토콜>이라는 것을 보았다. 십오분 가량의 단편이었고 미식 축구 선수들이 뇌진탕을 당하는 장면을 슬로우모션으로 역재생하여 이어붙인 것이었다. 충돌이 일어나는 순간은 폭력적이기도 하고 마음이 좋지 않아서 나에겐 그다지 보고 싶지 않은 장면인데 그것을 눈 똑바로 뜨고 보라는 듯이 느리게 처리해서 이어붙인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충돌과 낙상이 일어난 후 선수들은 좌절한 포즈로 바닥에 오랫동안 앉아있고 다른 선수들이 그를 구경하러 오거나 긴급하게 들것에 실려나가는 등 하는데 음악을 아주 크게 틀어놓고 그런 장면을 한참동안 보여주다가 영상을 뒤로 감아 우주 공간에서 헤엄치는 듯한 충돌 전의 몸동작을 보여주는 식이었다. 화면에 등장하는 선수들은 대부분 흑인이었다. 어떤 의도를 가지고 그렇게 했을 거라는 추측을 하기 시작하자 그 영상이 몹시 징그럽다고 생각되었다.
디박스를 결제한 후 재미있는 다큐멘터리를 찾기 위해 이것저것 여러번 틀어보다가 <휴먼>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다. 그것의 썸네일 이미지는 수백명 단위의 사람들이 빼곡하게 모여 원을 둘러싼 원, 원을 둘러싼 원을 형성하고 있는 것을 조감으로 찍은 사진이었다. 올림픽 때 인간들을 모아서 하는 인간 쇼와 같은 이벤트의 한 순간을 포착한 것 같았다. 그 다큐멘터리의 놀라운 점은 주제가 ‘인간’이었다는 점이다. 이것 역시 앞부분 조금밖에 보지 않았는데, 다음과 같은 식이다. “Human”이라는 글자가 웅장한 산맥의 위에 나타난다. 광대한 초원, 산맥 위를 줄지어 가는 유목민(?) 무리가 보인다. 그리고 까만 배경에 덩그러니 한 사람이 앉아 주절주절 말을 하는 인터뷰 영상이 이어진다. 질문은 가장 행복한 순간은 무엇이었습니까? 사랑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따위인듯 하다. 다양한 인종 다양한 신체 다양한 언어권의 인간이 나와 자신이 생각하는 행복이나 사랑에 대해 말한다. 다시 화면이 바뀐다. 넓디 넓은 하늘을 새떼가 맹렬히 날아간다. 아시아의 어느 나라, 넓은 파도 풀에 빈 공간 1도 없이 수천명의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 파도를 기다리고 있다. 파도가 몰려올 때마다 그 대형이 무너지고 사람들끼리 엉킨다...
지난 주말 동안 시청을 시도했던 다큐멘터리 <모든 것의 이면>은 세르비아를 배경으로 20세기를 지나온 엄마의 삶과 그의 정치적 이념 등을 다룬 영화인 것 같다. 무엇보다 건물과 집안의 내부를 촬영한 방식이 아름다워 시간이 나면 이어보리라 생각을 하고 있다.
<내 안의 너>라는 다큐멘터리는 올해 eidf에서 본 것 중에 가장 흥미로운 작품으로 나는 트위터에서 처음 이것에 대한 소개글을 읽었다. 그 트윗은 이 영화를 대략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었다; "중국 여성 감독이 자유로운 삶을 동경하여 미국에서 배낭 여행을 하게 됨. 여행 중 한 남자를 만나는데 집도 없이 떠돌이 삶을 사는 그의 자유로움에 흥미를 느껴 그를 따라다니기 시작함. 그러나 감독은 곧 그가 백인 남성으로서 사람들의 호의를 이용한다는 느낌을 받아 혐오감을 느껴 그와 헤어짐. 시간이 지난 후 그의 가족을 찾아가게 된 감독은 사실 그가 조현병에 걸려 한 곳에 머무르며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없는 사람임을 알게 되고 많은 노숙인들이 조현병 증상을 겪는 자들이라는 것을 알게 됨." 이 짧은 소개가 인상적이었기에 곧 그 다큐멘터리를 보기 시작했는데 다른 모든 부분은 그 트윗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요약될 수 있음에 동의가 가능했지만 감독이 그 남성에게 실망하고 그와 여정을 같이 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에 그의 백인됨-남성임이 그 트윗이 말한 것만큼 주요한 요인으로 영화에 나타나 있었는지 동의할 수 없었다.(그것을 기대하고 본 나는 어리둥절했다) 트위터에서 그 다큐멘터리가 그런 방식으로 설명되었다는 것이 흥미롭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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