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잎들의 유령들




트위터에서 사람들이 <풀잎들>이 좋다고 '미쳤다'는 말이나 '도대체 이게 무슨' 식의 반응을 쏟아내고 있어서 나도 거기에 휘둘리며, 그리고 나도 김민희가 나오는 홍상수의 영화를 모두 즐겁게 봤으므로, 기대되는 마음으로, 개봉하고 시간이 많이 지나고나서 보면 안된다는 조바심과 초조함으로 얼른 그것을 보러 갔다. 영화는 흑백이었고 1~4명의 인간들이 화면을 가득 채우는 식의 구성이 많았다. 카페 테이블을 두고 두 사람이 마주 앉아있거나 네 사람이 마주 앉아있거나 더 좁은 테이블에 한 사람이 노트북을 마주하고 앉아있는데 그들이 화면에 꽉 차서 좀 부담스럽기도 하고 그랬다. 지금 생각해보면 두 사람 이상이 앉아있는 경우 옆에서 찍어서 사람들이 카메라에 옆모습을 내보이도록 되어있었는데 이유영이 등장하는 장면에서 이유영 맞은편에 앉은 남자는 뒷모습으로만 등장했고 그 장면의 (시간 분량 중) 80퍼센트정도 되었던 때 벽에 어린 그림자의 형태를 통해 코와 턱의 형태를 짐작할 수 있도록 했다가 신이 끝날 때 그의 턱-코를 조금 보여주었다. 이유영과 연애하고 있던 어떤 남자가 이유영과 술을 많이 마신 후 투신 자살을 한 모양이었고 그 남자의 친구였던 맞은편의 남자는 이유영을 마구 다그치고 있었고 이유영은 계속 우리는 사랑한 것뿐이에요, 라고 말하고 울었다.

역시 즐겁게 보긴 했지만 그렇게 펄쩍 뛸만큼 좋지는 않았는데 어제 문득 이유영을 검색하다가 김주혁을 생각하게 되었고 그래서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을 다운받아서 밤에 보기로 했고 그것을 다운받은 후 확인차 한번 틀어보았는데, 예전에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을 보고 몹시 불편했던 기억이 났고, 그건 대부분 여성 인물들의 대사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그건 김민희가 그의 영화에 나오고 난 이후로부터 꽤 많이 개선되지 않았던가, 라고 생각했지만 비김민희 여성 인물의 경우 그 대사의 수준이나 말씨 같은 것들이 홍상수가 기존에 사용하던 여성 인물들의 언어의 수준과 크게 다른 점이 없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하였다. 나는 괜히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을 다운받아 확인차 열어봤다가 기분이 언짢아졌고 어제 밤에 다운받은 것을 보지 않았다.

기주봉은 자살 시도를 했다고 하는데 그것에 대해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다가 "내가 자살하고 나서는,"이라고 하며 말을 시작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 부분의 음산함이 몹시 낯설게 다가오긴 하였고 <그 후>에서 권해효가 김민희에게 선물하는 나쓰메 소세키의 <그 후>와 내가 좋아했던 소세키의 책인 <마음>의 음산함이 생각났다.

어떤 사람은 밤의 해변부터 홍상수의 영화를 볼때마다 현실의 tmi가 떠올라서 영화에의 집중을 방해했지만 이번 영화는 그렇지 않아서 좋다고 하였는데 나 역시 이번 영화를 볼 때는 그런 생각이 별로 나지 않았고 그것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그 사실에 익숙해져서이기도 하겠지만 영화 자체가 다루고 있는 이야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았다. 나는 홍상수의 영화 중 <그 후>를 가장 좋아하는데 그것을 가장 좋아하는 이유는 현실의 어떤 것을 가장 많이 생각나게 하기 때문이고 그러므로 가장 역겹기 때문이고 그 역겨움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기 때문이고 그것을 보다보면 그 역겨움을 좋아하는 나에 대한 의심도 생기는데 그런 복잡한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 좋았기 때문이다.

김민희가 나오는 홍상수의 영화를 볼 때마다 그가 김민희를 자꾸만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복권시켜주고 아주 높은 곳에 위치시켜주려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풀잎들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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