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모자를 쓴 남자

12월 11일 화요일, 게르투르드가 그림들을 보기 위해서 아틀리에에 다녀갔다, 나의 집에서 완전히 첫 작품인 어릿광대 모자를 쓴 나이 먹은 어린애 그림을 보고 미친 듯이 웃음을 터뜨린 쥘 말고는 아직 아무도 그림들을 보지 못했다. 야니는 전날 밤 계속 작업한 그림, 어쩌면 마지막일 수 있는 그림 뒤에 목탄으로 검은색 원을 두른 숫자 '25'를 막 적어 넣은 참이었다. 일주일 동안 그는 나의 초상화 스물다섯 점을 그린 것이었다, 반면, 함께 산 지 7년이 되도록 야니는 게르투르드의 초상화를 한 번도 그린 적이 없었고, 목이 잘린 기린 형상으로 그녀를 그린 것을 제외하면, 단 한 번도 그 어떤 데생조차 하지 않았다. 야니의 커다란 폭우 그림들 중 하나에 기대어 놓여 있는, 순서대로 줄지어 놓인 이 모든 그림들에 대해 그녀는 질투심을 느끼지 않았을까? 절단기로 줄무늬를 새긴 캔버스에 그려진,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수증기와 그 색의 섬세한 뉘앙스, 물안개에서 가벼이 퍼지는 장밋빛,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무지개 흔적의 초록빛들을 담은 이 폭우 그림들은 초상화가 그려지는 동안에 나와 함께 있었다. 잠시 쉬는 시간이면 나는 포즈를 취하느라 굳은 다리를 편안하게 풀기 위해 담배를 피우며 아틀리에 안을 왔다 갔다 했다, 그러다 항상, 가로 2미터 세로 3미터 크기의 그 커다란 폭우 그림들 중 하나 앞으로 가 서 있었다, 그림을 보려고 고개를 들면서, 뒤로 물러서면서, 앞으로 다가서면서, 손바닥 끝으로 그림의 재료를 살며시 스치면서, 그 색깔들의 신비로움 속에서 몽상에 잠겨 있었다. 게르투르드는 그 전날 나에게 전화를 걸어, 그녀와 같은 날, 1월 16일, 에어 아프리카로, 우아가두구행 비행기 편을 예약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야니의 독일인 판매업자 역시 우리와 함께 가기로 한 것이 분명했다, 우아가두구로 가는 여정에서의 트리오, 즉 옆구리에 단추가 달린 펠트 바지를 입은 쾰른의 그림 판매업자, 빨간 모자를 쓴 해골, 목이 잘린 기린을 함께 상상하기란 어려웠다. "15일에 전쟁이 일어난다면", 게르투르드가 덧붙여 말했다, "엠바고 때문에 15일로 결정된 미국의 최후통첩이 있다는 것을 당신도 알겠지만, 나는 가지 않을 거예요, 위험이 너무 클 것 같아요, 당신은, 당신이 야니와 하고 싶은 대로 해요." 야니가 보험 문제로 건강 진단서가 필요했기 때문에 그녀는 그를 위해서 내 주치의 연락처를 물어보았었다. 12월 11일, 그 화요일에, 야니는 몹시 신경질이 나서, 내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긴장한 모습으로 아틀리에에 도착했다. 나는 일찍 도착해, 라인과 다뉴브 광장에서 추위를 피해 들어간 파리지엔 카페 의자에 앉아 그가 오는지 살피고 있었다, 그 광장에는, 나이 든 여자 택시 운전기사가 방금 말해준 바에 따르면, 2년 전까지만 해도 헤롤드 병원이, 병든 아이들을 받아주던 아주 오래된 건물의 병원이 여전히 세워져 있었다고 했다. 나는 영화 제목이 잇달아 흐르는 비디오 상점의 빨간 광고판을 보고 있었다, <죽음에 맞서> <암흑의 천사> <생지옥 같은 밤의 기억> <나를 안아줘> <흡혈귀> <죽음의 강> <하얀 고요>가 차례로 지나갔다. 나는 75번 버스에서 내리는 야니를 보았다, 야니는 절대로 쓰지 않겠다고 했던 챙 달린 모자를 쓰고 빠른 발걸음으로 아틀리에 쪽으로 가고 있었다. 나는 게르투르드와 함께 건배하기 위해서, 또한 그 누가 알겠냐만, 우리의 작업의 결과를 축하할 수도 있었으므로, 샴페인 한 병을 가져왔었다. 야니는 당장 화를 낼 기세였다. 그 전날, 그는 예술 작품 도난과 위작 문제에 전문화된 국제 범죄 퇴치 부서의 경찰들과 함께 온종일을 보냈다. 그들의 사무실에서 베르사유로, 경매인에게로, 그러고 나서 그림들을 은닉했던 그 마비 환자 여인의 집으로, 그들은 그를 이리저리 데리고 다녔다. 야니에게는 해외협력부에 다시 들를 시간만 겨우 있었을 뿐이다, 그가 코트디부아르, 부르키나파소, 말리의 국경을 넘는 데 필요한 통행증을 신청해놓은 곳이었다. 책임자들은 통행증을 약속했었는데, 결국에는 그것을 거절했다. 그들은 이런 폭동의 시기에, 게다가 근방에서 전쟁의 징후가 보이는 시기에 아프리카를 여행하는 것은 미친 짓이라고 말했다. 사막에서는 투아레그족이 권력을 차지하겠다고 위협하고 있었다. 이웃 국가들에서는 마치 비가 쏟아지듯 계속해서 쿠테타가 일어났다. 같은 날, 그의 독일인 판매업자는 야니에게 전화를 걸어, 1월 15일로 결정된 최후통첩일에 미국이 이라크를 침략한다면 야니를 방문하려던 계획을 포기하겠다고 말했다. 게르투르드와 마찬가지로 그도 마지막 순간에 취소할 수 있도록, 16일자 에어 아프리카 비행 편을 예약한 것이었다. 프랑스인 판매업자는 이런 전쟁의 위협에서 파생되는 위기의 결과를 걱정했다, 더 이상 그 어떤 예술 작품도 소더비 경매에서 팔리지 않았다, 리즈 테일러의 반 고흐 작품들과 알랭 들롱의 르느아르 작품들은 작품 운반구 위에 그대로 남아 화제가 되었다, 크리스티사는 10퍼센트 감원을 단행했다. 야니도 그의 공식 시세가 폭락하는 것을 보게 될까 걱정했다. 그는 독일인 판매업자의 주선으로 자신의 그림들 중 하나를 십오만 달러에 재구매하도록 시켰다. 그리고 그는 문제의 그 니바키네를 섭취한 나머지 정신을 잃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이제 들리는 소문에 따르면, 그것은 말라리아로부터 보호해주지 않을 뿐 아니라 사람을 미쳐버리게 만든다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다. 프랑스인 판매업자는 백만 프랑 이상의 비용이 드는 석판화집을 더 이상 공동 제작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는 언론 보도 예약과 노동임금을 책임지고 싶어 하지 않았다. 야니는 임금을 지불하기 위해서 노동자들에게 그의 그림들을 주어야만 했다. 그의 은행가는 마레 지역에 위치한 그의 새 아틀리에 공사를 위해 승인했던 대출을 중단하고 싶어 했다, 그런데 그는 예전의 아틀리에를 아직 처분하지 못하고 있었다. 누군가 벨을 눌렀다, 우리는 게르투르드라고 확신했다. 야니는 큰 그림을 다시 시작했는데, 전날 막 시작된 것이었고, 그가 했던 작업 중에 가장 큰 그림이었으며, 노란 색조의 혼합에 적합한 완벽한 목탄화였으나, 그의 신경질이 체계적으로 망가뜨리고 파괴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때 게르투르드와 샴페인을 기다리면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야니의 스페인 애인에게, 아니면 힐튼 호텔로 전화를 걸어달라고 부탁한 보고타의 판매업자에게 야니가 없다고 대답하기 위해서 복층의 힘든 계단을 걸어올라갔던 게 나였으므로, 아틀리에의 문을 열러 간 사람 역시 나였다, 나는 야니의 모델인 것에 더해 그의 비서가 된 것이었다, 완전히 게르투르드처럼 된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의 모델인 적이 없었다. 그 문제는 한 번도 거론된 적이 없었다, 게르투르드를 목이 잘린 기린으로 표현한 은유적인 그림,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이상한 방식으로 그녀를 표현한 그 그림을 제외하면 야니는 한 번도 그녀의 초상화를 그리지 않았다. 나는 코르푸 이후 게르투르드를 다시 보지 못했었다. 나는 그녀를 맞이하기 위해 "안녕하시요, 무슈"라는 멍청한 문장을 준비했었다, 실제로, 내가 문을 열었을 때 나와 마주해 말을 건넨 사람은 어떤 남자였고, 소위 디드로 센터를 찾는다면서 벽에 걸려 있는 야니의 큰 그림들 쪽으로 집요하게 시선을 던지던 자주빛이 감도는 피부의 마약 상습자 같은 젊은이였다. 게르투르드는 십여 분 남짓 늦게 도착했다, 고상하고 우아하게 단장한 그녀는 가늘고 섬세한 가슴 위로 V 형태의 네크라인이 깊게 파인 완전히 검은 옷차림을 하고서, 거기에 길고 푸른 실크 스카프를 두르고 색이 옅은 양말을 신고, 지나치게 굽이 높은 구두를 신고 서툴게 걸으며 수줍어했고, 틀어 올린 그녀의 머리카락은 한 뭉치로 모여 있었는데, 그전까지만 해도 내가 보았던 그녀의 모습은 항상 머리를 하나로 묶거나 전부 풀어헤친 모습뿐이었다. 전에 없던 게르투르드의 이 이미지는 내가 코르푸에서 닷새 동안 그녀와 함께 생활하면서 간직한 이미지, 즉, 집 안에서 맨발이거나 두꺼운 편직 양말을 신고, 무릎까지 내려오는 스웨터를 입고 돼지 구유에 가져갈 양동이를 들고 있는, 불품없는 키 큰 여자의 이미지와 전혀 일치하지 않는 것이었다. 게르투르드는 초상화를 보고 싶은 조바심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주의하면서, 어쩌면 일종의 원망과 함께, 젊은 어머니가 이마에 입맞춤을 해주는 어린애처럼 단번에 몸을 움츠린 야니를 포옹하러 갔다. 게르투르드는 그러면서 그녀의 옷가지를 의자 위에 놓으려고 했다. 그런데 푸른 스카프와 검은 망토가 아틀리에의 더러운 바닥으로 떨어져버렸다. 그녀는 그것을 모른 체했고, 야니가 조수를 시켜 연대순으로 분류해놓은 그림들을 팔짱을 낀 채 하나씩 살펴보았다. 작업대 위의 새로운 커다란 그림은 점점 더 처참해지고 있었다. 우리는 초상화들을, 우리의 초상화들을 바라보는 게르투르드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턱이 경련을 일으켰지만, 그녀는 조금이라도 속내를 내비치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녀가 그림들을 몹시 싫어한다는 것은 확실해보였고, 이런 작업을 하도록 야니를 부추기며 도와준 나를 혐오하는 것도 분명했으며, 열흘이라는 시간 동안 스물다섯 점의 그림을 그릴 정도로 거기에 순응한 그를 혐오하는 것도 분명해 보였다. 그녀는 그림들의 다양성, 특히 그 크기를 몹시 싫어했다, 그녀는 뾰족한 그녀의 굽으로 그림들을 찢어버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녀는 가능한 가장 냉정한 목소리로 가까스로 자신을 억제하며 그림을 그대로 내버려두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덜 나쁘네." 나는 마르지 않은 물감, 먼지, 야니의 담배꽁초로 더러워진 게르투르드의 옷가지를 주으러 갔다. 야니는 샴페인 병을 열었다. 게르투르드는 내 왼편에, 내가 포즈를 취했던 스툴 위에 앉았다. 야니는, 우리가 그 시간들을 견디려고 마셔버린 빈 샴페인 병들과 맥주 캔들이 쌓여 있는 테이블의 다른 쪽에서 등을 구부린 채, 나에게 사용하려고 파란 하늘빛으로 밑칠해둔 작은 캔버스들 중 하나를 잡았다, 그리고 나에게 이야기하면서, 목탄으로 게르투르드를 그리기 시작했다. 게르투르드는 그때도 마치 아무것도 알아채지 못한 것처럼 행동했다. 나는 그녀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었다. 이제는 내가 그녀에게 질투심을 느꼈다, 야니가 바라보고 그리는 대상이 더 이상 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더 이상, 나를 바라보며 나를 그리는 야니에 의해 정신이 몽롱해질 수 없었다, 그의 시선이 우리의 것과는 전혀 다른 친밀함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눈을 감고도 게르투르드의 누드를 그릴 수 있을 거야." 그가 말한다, "나는 그녀의 몸의 세부적인 특징을 전부 손으로 감지해서 속속들이 잘 알고 있거든." 나는 그들을 남겨두고 빠져나오기 위해 저녁 식사 약속이 있다고 우겼다. 로뱅이나 내가 늘상 하던 일은 아니었지만 나는 느닷없이 로뱅 집에 나타날 거였다. 야니는 내가 거짓말한다고, 내가 거짓으로 지어낸 주소에, 그런 주소가 있다고 아무도 믿지 않는, 특히 흑인 택시 운전기사들은 믿지 않는 바르바네그르라는 그 길에 내려달라 하는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날은 야니와 게르투르드의 마지막 저녁 시간이었다, 그녀는 운전면허 시험을 치르기 위해 다음 날 네덜란드로 떠났다. 나는 그녀에게 속삭였었다, "떠나지 말아요!" 그녀는 나에게 왜냐고 물었었다. 그래서 나는 붓을 닦는 야니의 등 뒤에서, 그녀 없이는 방황하는 어린애일 뿐인 그가 권총으로 머리를 쏘아 자살하는 제스처를 해보였었다. 지금은 그런 제스처를 취한 것을 후회하고 있다, 나는 게르투르드가 그것을 야니에게 말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고, 야니가 나에게 그 일을 나무랄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포즈를 취할 시간이 또 있을까? 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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