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보고 있는 원고는 반복적으로 인공지능의 발전에 따른 향상된 존재를 인간이 그려보는 것에, 그리고 인간주의적 관점과 초지능주의의 관점에서 향상된 존재가 인간에게 적대적일 거라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인간보다 훨씬 나아서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하는 생각들에 공통적인 오류가 있다고 말하는데 그 오류는 강함과 약함의 구분이라는 것이 인간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일 뿐 아니라, 설령 그런 강한 인공지능이 구현되었다고 해도 근대 이후 지적으로 향상된 인간이 분열증과 우울증을 겪고 있듯 인공지능에게도 그런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심리적'으로 건강한 상태가 향상된 존재에게서 지속될 수 있을까? (지금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어휘로 표현하자면 그것을 심리적 불/건강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인공지능에게서 그것이 어떠한 형태로 나타날지 알 수는 없다.) 어떤 능력을 자꾸 키우고자 하는 생각이 든다. 더 많은 능력이 다른 삶을 살게 만들어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그런 향상이 오히려 우울증이나 분열을 불러올 수 있다고 원고는 거듭 말한다. 그러면 계속적 향상을 바라지 말고 만족하는 법을 배워야 하나. 갑자기 엄마아빠 같은 삶의 태도를 배우려고 노력해야 하나. 아니 근데 그들은 만족했나? 만족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받아들이는 태도의 문제인 것 같긴 한데. 지금 내가 뭘 받아들여야 될지 모르겠다. 혼자 사는 건 받아들일 수 있는 종류의 일이 아니지만 사람과 함께 사는 건 맞춰가고 받아들일 수 있는 문제인가? 왜? 누군가랑 같이 있으면 어쨌든 외로움은 덜하니까?

<악어노트>를 빌려준 친구는 <악어노트>가 징징대서 싫다고 했다. 자기가 요즘 그런 걸 받아줄 상황이 아니라고. 무척 절절한 사랑 얘기이고 감정에 흠뻑 젖어 있는 글이긴 하다. 그건 그렇고 표2에 "젠더 바이너리 레즈비언을 대표하는~" 이라는 식으로 약력의 첫 문장이 되어 있는데 논바이너리의 논이 탈자인 건지 아니면 이분법을 벗어나진 않은 레즈비언이라서 바이너리라고 부러 적은 게 맞는지 궁금하다.

여튼 난 너무 바보 같다. 내 자신에 대해 뭘 좋아해야 될지 모르겠다. 감정을 억압하는 게 분명 필요하긴 한데 어디까지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항상 아무도 볼 수 없고 나 혼자만 확인할 수 있는 곳에 이렇게 토로하는 게 맞나. 어제는 자기 전에 녹음기를 틀어놓고 중얼거리다가 잤다. 중간에 한 번 깼더니 녹음기가 3시간 41분째 돌아가고 있었다.

오탈자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악어노트>에 띄어쓰기가 제대로 안된 부분이 종종 있다. 볼때마다 어색한 느낌이 든다. 편집자 아니었으면 완전 모르고 넘어갔을 일인데 마주칠 때마다 민망한 기분.

댓글

가장 많이 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