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일기

수제비로 점심을 먹고 연희대공원이라는 펫 카페에 앉아있다가 갑자기 울적해진 나에게 와이가 자신이 최근 새로 시작한 학술 블로그나 원노트에 남기고 있는 연구 관련 짧은 메모들을 예로 들어 블로그에 글에 관한 글을 써보거나 짧은 메모를 남겨보면 어떻냐고 하였다. 나는 아무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고 하였고 와이는 그것부터라도 시작해보라고 하였다.

와이와 비교적 일찍, 2시쯤 헤어져서 집에 와서 누워있었다. 오늘 병원에 가서 첫 일주일동안 약효가 너무 좋았노라고 의기양양하게 말을 했는데 그 말을 의식해서인지 도리어 더 울적해졌다. 왓챠로 페어런트 트랩을 보다가 이대로 시간을 보내면 안되겠다 싶어서 땡스북스와 책과밤낮이라는 서점에 들르기 위해 집을 나섰다. <오늘의 sf>를 사볼까 하고 갔는데 두 곳 모두 그 책이 없었던 것은 물론이고 다른 사고 싶은 책도 없었다. 합정 교보에 있는 재고 1권을 확인하고 그쪽으로 발을 돌렸는데, 막상 실물을 보자 너무 허름한 책이라는 생각(흑바탕에 흰글씨로 인쇄되어 있는 페이지 중 하나가 완전히 번져 있었다)에 도로 책장에 꽂았고, sf 서가였던 그쪽을 둘러보다가 두 칸 위에 꽂혀 있던 르 귄의 <세상을 가리키는 말은 숲>이라는, 얇고 가벼운 소설책을 샀다. 제목도 마음에 들었고 분량도 내가 좋아하는 분량이라서. 

책을 산업으로 보기 시작한 후로 책을 보는 일이 고역이다. 소설을 좋아했고 무척 많이 읽었는데 문학하는 사람들을 몇 명 만나보고 난 이후로 구역질이 나서 잘 못 읽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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